네이버 캐스트 참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036&path=|186|206|268|&leafId=322해밀턴이 창안한
사원수는 삼차원 공간을 묘사하는 데에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일반적인 벡터를 다루는 이론이 발전하면서 사원수는 잊혀진 이론이 되어 버렸다. 이랬던 사원수가 최근에는 수학이 아닌 전혀 엉뚱한 분야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바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었다.
사원수가 잘나가던 시절

해밀턴은 사원수의 발견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생각하였다. 실제로 삼차원 공간을 구조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 사원수는 수많은 발견과 발명의 근본 원리가 되어 해밀턴의 자부심도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원수를 이용하여 맥스웰이 정립한 전자기학은 이후 과학 문명의 가장 근본이 되는 대발견이라 할 수 있다.
|
해밀턴의 사원수는 당대 수많은 수학자와 과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해밀턴 사후, 그의 제자였던 테이트(Peter Tait)와 퍼스(Benjamin Peirce,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퍼스의 아버지)에 이르러서는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활용되는 도구 역할을 사원수가 하게 되었다.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사원수는 누구나 공부해야만 하는 과목이 되면서, 1899년에는 사원수에 대한 연구만을 다루는 사원수 학회(Quaternion society)까지 구성되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선배들의 결과를 답습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어서, 사원수를 더욱 연구하여 사원수 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수학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미국의 기브스(Josiah Willard Gibbs)와 영국의 헤비사이드(Oliver Heaviside)였다. 지금의 미국이야 수학 최강국이고 뛰어난 미국인 수학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여도 미국은 수학 분야에 있어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게다가, 기브스는 미국의 첫 공학 박사여서 엄밀히 말하면 정통 수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헤비사이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어서, 정통 수학자들이 만든 첨단 이론을 능가하는 이론이 무명의 수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마추어가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사원수 이론에 정통하였기에 기존 이론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브스는 수학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마도 그의 이름이 가장 유명한 것은 화학 분야가 아닐까 싶다. 바로 “기브스 자유 에너지”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이다. | |
|
|

미국의 과학자 조사이어 기브스(Josiah Willard Gibbs 1839-1903).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으며, 수학에서는 벡터 관련 업적이 크다. | |
|
사원수를 더 확장하면? 팔원수, 십육원수

실수에서 복소수, 복소수에서 사원수로 수의 범위가 커지면서, 당연히 사원수를 확장한 수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사원수를 확장한 수는 무엇이 될까? 허수 단위를 하나 더 더한 오원수? 해밀턴이 삼원수의 곱셈 구조를 연구하다 허수를 하나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처럼, 사원수에 허수 단위를 추가한 구조를 연구해 보면, 신기하게도 사원수를 확장한 수는 허수 단위를 네 개나 더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사원수를 확장하면 실수 단위 하나와 허수 단위 일곱 개로 이루어진 팔원수(八元數, octonion)가 된다. 복소수가 두 개의 요소가 필요한 수이니 이원수(二元數)로 생각한다면, 1-2-4-8 순서로 두 배씩 커지고 있다. 이 수는 영국의 수학자 케일리(Arthur Cayley)가 만들어내었는데, 사원수를 포함하니 교환법칙이야 당연히 성립하지 않지만, 더 놀랍게도 이 수는 결합법칙마저 성립하지 않는다. 즉, 세 팔원수 a, b, c에 대하여 | |

|

영국의 수학자 아서 케일리(1821–1895). 팔원수를 만든 수학자
| |
|
|
인 경우가 존재한다.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원수도 꽤나 이상한 수였는데, 팔원수쯤 되면 과연 무엇을 수라 불러야 할지 상당히 모호해진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보자. 팔원수를 더 확장하면 무엇이 될까? 1-2-4-8로 두 배씩 커지니 십육원수? 그렇다. 실제로 팔원수를 확장한 수는 열여섯 개의 요소가 필요한 십육원수(sedenion)가 된다. 그런데 이 수는 원점에 이르는 거리가 곱셈에 대해 보존이 되지 않아, 더 이상 기하학적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수는 팔원수까지 확장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사원수 대신 오일러 각이 회전변환에 이용돼

사원수의 특징은 곱셈 구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원수를 대체하는 이론을 구성하려면, 회전변환을 사원수의 곱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 방법은 사실 해밀턴보다 훨씬 앞서 오일러(Leonhard Euler)가 이미 잘 정리해 놓았다. 그의 방법은 공간의 세 축을 잡고, 각 축을 회전축으로 하여 적당히 회전하는 것이었다. 계산이 다소 복잡하긴 해도 착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때 회전하는 각 세 개를 오일러 각(Euler angles)이라 부른다. | |
|
당연한 일이지만, 해밀턴이 회전변환을 사원수의 곱셈으로 나타낸 것도, 오일러 각을 이용한 계산을 토대로 하여 구성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행렬이라는 도구가 있어서 오일러 각을 이용한 계산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할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대단히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되어서 회전변환을 나타내는 데는 상당히 불편하였다. 이것도 해밀턴이 사원수를 구상하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 |

세 각 α, β, γ만큼 차례로 회전하여 새로운 좌표축을 만든다. <출처: (cc) Lionel Brits>

|
삼차원 공간에서 회전변환을 오일러 각을 이용하여 나타내려면, 한 점을 나타내는 세 개의 성분으로부터 새로운 세 개의 성분을 만들어내어야 하므로, 세 개의 문자에 대해 세 개의 식이 필요하다. 이것을 행렬로 나타내면 3행3열 행렬이 되어 모두 아홉 개의 성분이 필요하다. 사원수가 네 개의 성분으로 회전변환을 나타내는 데 비해 오일러 각은 아홉 개의 성분이 필요하므로, 사실상 군더더기 정보가 많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일러 각은 사원수에 비해 이해하기가 쉬워서 사원수가 수학의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회전변환 또한 사원수의 곱셈보다는 오일러 각을 행렬로 바꾸어 나타내게 되었다.
오일러 각을 이용한 회전변환에는 짐벌록이라는 약점이

오일러 각을 이용한 회전변환은 세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각도만 결정하면 되므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워 많은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비행기의 회전운동을 나타내는 세 요소인 피치(pitch), 롤(roll), 요(yaw)도 오일러 각을 이용한 것이다. 전체적인 움직임을 세 요소로 나누어 파악할 수 있고, 또 반대로 세 요소를 조합하여 전체적인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어 실용적인 목적으로는 충분하며 계산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짐벌록(gimbal lock)이라 부르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 |
비행기의 회전운동을 나타내는 피치(Pitch), 롤(Roll), 요(Yaw) |
자이로스코프, 회전자가 짐벌에 고정되어 돈다. |
|
짐벌(gimbal)은 자이로스코프에서 회전자(rotor)를 고정하는 장치로, 피치, 롤, 요의 세 회전 요소를 다루기 위해서는 세 개의 짐벌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는 피치, 롤, 요를 조합하여 원하는 회전변환을 얻을 수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다음 그림에서 왼쪽은 평상시 비행기의 상태를 나타내고, 오른쪽은 피치 90도인 상태를 나타낸다. 붉은 짐벌이 회전하여 비행기가 수직으로 서면, 초록 짐벌이 파란 짐벌과 겹쳐져 버려, 어느 짐벌을 움직여도 비행기가 좌우로 움직이는 요 움직임을 나타낼 수가 없다. 즉, 요를 나타내어야 할 짐벌이 잠겨(lock)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짐벌록(gimbal lock)이라 한다.
| |

정상적인 상태(좌)와 짐벌록(gimbal lock)에 빠진 상태(우) <출처: (cc) MathsPoetry>

|
짐벌록을 피하려면 세 개의 짐벌을 움직이는 순서를 바꾸든지, 아니면 별도의 움직임을 위해 네 번째 짐벌을 준비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새로운 계산을 해야 하므로 무척 성가신 일이다. 처음으로 인간을 달에 착륙하게 하였던 아폴로 11호의 경우, 달 궤도를 돌던 모선의 자세를 제어하는 방식이 바로 피치, 롤, 요를 조절하는 것, 즉 짐벌 세 개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네 번째 짐벌을 사용하는 방안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채택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움직이는 각도가 90도에 가까워지면 경고와 함께 자동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수동으로 전환하여 짐벌록을 피하는 다소 원시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모선을 조종하였던 콜린스(Mike Collins)는 관제 센터에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네 번째 짐벌을 보내주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였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시대에 부활한 사원수

벡터 해석학과 선형대수학이 발전하면서 사원수는 필수과목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사라져 버린 것 같던 사원수는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우주선은 원시적인 수동 조작 방식으로나마 짐벌록을 피할 수 있었지만,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는 짐벌록이 생기는 부분에서 수동 조작을 할 수가 없어, 모든 것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짐벌록이 생기지 않는 사원수를 이용한 회전변환은 당연히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게다가 한 번에 아홉 개의 성분을 다루어야 하는 행렬에 비해, 사원수는 네 개의 요소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장해야 할 정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계산에 소요되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원수는 요즘의 실감 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만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다. 로봇 팔과 같이 회전 운동이 필요한 상황은 거의 모두 사원수를 이용하여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해밀턴이 사원수를 만들던 때는 컴퓨터니 로봇이니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다. 순수하게 수학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더 간명한 이론으로 대체되었다가 순수하게 공학적인 목적으로 되살아난 예는 아마 수학의 역사에 다시 없을 것 같다.
| |
- 글 박부성 /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
-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수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재미있는 영재들의 수학퍼즐 1,2]와 [천재들의 수학노트]가 있다.